Life Log

2018년 회고

masoume 2019. 1. 1. 14:51

2018년은 살면서 가장 이상한 해였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상이 틀어지고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남이 되어버렸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 잦았고 그 사건들은 내 일상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나이지만 2018년의 일들은 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좋은 순간과 나쁜 순간 모두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있고 하나씩 꺼내어 이젠 기억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사건들

사랑했던 회사를 타의로 떠나게 된 것 

올 봄, 약 2년 간 개발자로 몸담고 있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제품을 만들고 있던 친구들 6명이 동시에 퇴사를 했다. 퇴사 통보와 퇴사까지는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 전 주만 해도 제품팀은 새 서비스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당한 일이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제대로 화 한 번 못내고 쫓기듯 사무실을 나왔다.

당시 퇴사 상황을 알리려 엄마와 짧게 통화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엄마는 기분이 어떻냐고 물었다. 슬프지. 내가 뭘 잘못했나 싶고. 슬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내가 만들어간다는 즐거움과 자부심으로 회사를 다녔는데 쫓겨난 셈이니.

퇴사 이후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6개월 간 푹 쉬었다. 개발자를 구하는 회사도 많았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는 HR 담당자분도 많이 있었지만 서비스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 개발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전 회사처럼 내가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서비스는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HR분들의 연락을 씹어 하반기 취업 때 쓸 수 있는 회사가 몇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은 항상 나를 자른 이전 회사에 대한 원망과 저주로 끝났다.

만들고 싶은 것도 관심있는 것도 없이 그저 쉬고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아 6개월을 내 삶에 돌보는 데 알뜰히 사용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돌아온 후, 구직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나를 자른 이전 회사 대표도 만나게 되었다.


이별 이후

1년 6개월 가량을 만났던 사람과 헤어졌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만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애정은 식지만 서로에 대한 익숙함과 신뢰로 만나게 되는 것일텐데 그 사람은 매번 가슴이 뛰어야 했나 보다. 헤어짐의 시기와 방식에 개인적으로 화가 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헤어지는 마당에 구구절절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번 연애를 통해 내가 참 사람보는 눈이 없다는 것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날 너무 소홀히 했다는 것을 배웠다. 매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하하호호 유야무야 만났는데 사실 속으론 많이 상처받고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여기서부터 이미 틀려먹었는데 호구처럼 넘어간 거지. 그래도 덕분에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어떻게 연애해야 할지 정리가 됐다. 


또다시 전직

편집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전자책 기획자, 웹 개발자로 전직을 해왔다. 그리고 얼마 전 데이터분석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개발에 흥미가 뚝 떨어지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데잇걸즈에서 기술 조교를 맡게 되었다. 수업 과정 마지막 한달 동안 수강생분들과 함께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GA와 Python, Pandas 등을 사용했다. 이전 회사에서도 GA는 내 담당이었는데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하야 데이터 분석가로 전직을 시도했고 11월부터 비즈니스 데이터 애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업무 환경이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상을 현실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쿼리를 짜본다.


사람들

새 식구 보리

사람은 아니지만 내 가족, 내 자식이나 다름 없기에 여기서 소개해본다. 보리는 개인구조 된 유기견이다. 종도 생일도 출생지도 모른다. 포인핸드에 개인 구조로 보리의 입양글이 올라와 있었고 당시 강아지 입양을 위해 매일 포인핸드를 들여다보던 내가 한눈에 반해 입양을 결정했다. 2018년 6월 30일에 입양되었고 털 색이 보리와 같아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쉬는 동안 보리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거의 육아를 하다시피 했는데 덕분에 현실에 집중하고 다시 일할 힘을 얻게된 것 같다. 물론 사고도 많이쳐서 수습하느라 애도 많이 먹었다. 2019년에는 보리와 함께 많은 곳을 누벼볼까 한다. 여행도 좋고, 나들이도 좋고. 강아지와 함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한해가 될 것 같다.


벌써 12년지기가 된 동기 녀석

2018년은 대학에서 유일하게 남은 내 친구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한 해였다. 함께 발리로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위에서 열거한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건내주었다. 동생 결혼식 때문에 집을 비우는 동안 보리를 봐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 친구와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동지애 같은 것이 있다. 친구나 나나 아웃사이더 성향이 강해서 친해진 것도 있지만 삶의 지향점도 비슷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지점들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에 졸업 후 더 가까워진 것도 있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같이 잘 살아가길 바라는 이 관계가 진짜 친구인 것 같다. 알게된지 10년이 지나서야 우리도 친구로서 조금 더 성숙해진 것이겠지. 

이 친구와 함께 살아나갈 2019년과 먼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발리에 간 첫날 본 꾸따의 아름다운 일몰. 도착한지 하루도 안되었지만 발리는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표이자 동료였던 사람

10월 말쯤 나를 잘랐던 대표에게 안부 메일을 꽤나 길게 써서 보냈다. 퇴사 당시의 뒷 이야기들을 얼핏 전해들었는데 매우 맘이 좋지 않았고 대표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어 메일을 쓰게 되었다. 메일에는 2년 동안 일하면서 내가 배웠던 것들, 나를 이만큼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봄의 일은 잊고 다시 새 서비스 런칭에 도전하라는 응원의 말을 담았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매우 감사하게도 답장이 왔고, 대표도 내 연락을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메일을 계기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밥을 먹으며 내가 퇴사하게 된 과정과 이유들을 대표의 시각에서 들을 수 있었다. 상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엘리트라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망과 그들의 욕망이 스타트업과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지, 일이 아니라 처세에 능해야 끝까지 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주류로 만들 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서비스를 만든 자는 서비스와 가장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두세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마음이 참 헛헛했다. 그 누구도 얻은 것이 없는 큰 사건에 다들 폐전병처럼 여기저기 흝어져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모르고 지나갈 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간만에 동료로 일했던 대표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갑고 좋았다. 아직 11월이었지만 나는 벌써 한해를 마무리한 느낌을 받았다.


인연들

데잇걸즈를 통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마케터, 창업가, 프리랜서, 해외 스타트업 경험자 등 지금까지 내가 접할 수 없었던 분야의 사람들이 었고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데잇걸즈가 끝난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나 책 이야기와 글쓰기, 좋은 영상과 글 공유, 영화 감상기 등 다양한 얘기들을 하고 있다. 일만 하고 살았으면 일에 함몰되어 우울했을 텐데 이 친구들 덕에 회사 밖에 세상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2019년에는 유독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다 일과 관계 없는 내 삶에 관한 것들이다. 올해의 버킷 리스트 항목을 하나씩 지워갈 때마다 자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참 좋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서로에게 도움주며 오래도록 만났으면 좋겠다.